
얼마 전 넷플릭스에서 '기생충'을 다시 보게 되었습니다. 반지하 집에서 시작해 호화로운 저택으로 이어지는 이야기가 펼쳐질 때마다, 봉준호 감독의 천재적인 연출력에 다시 한번 감탄하게 되더군요. 웃음과 공포, 풍자가 절묘하게 어우러진 그의 영화는 시간이 지날수록 더 깊은 여운을 남깁니다.
장르의 경계를 자유롭게 넘나드는 마법사
봉준호 감독의 영화를 보고 있으면 한순간도 눈을 뗄 수 없습니다. '살인의 추억'은 겉으로는 연쇄살인범을 쫓는 스릴러지만, 그 안에는 코미디와 사회 비판, 인간 드라마가 절묘하게 녹아 있습니다. 1980년대 한국 사회를 배경으로 한 이 영화는 송강호와 김상경이 연기한 두 형사의 수사 과정을 통해 당시의 사회상을 생생하게 보여줍니다. 특히 형사들의 폭력적인 취조 방식이나 장애인을 의심하는 편견 어린 시선 등은 그 시대의 어두운 단면을 적나라하게 보여주죠.
'괴물'에서는 한강에 나타난 괴생명체를 소재로, 가족애와 정부의 무능을 날카롭게 그려냅니다. 특히 미군이 한강에 독성 물질을 방류하는 장면은 실제 사건에서 영감을 받았다고 하죠. 괴물보다 더 무서운 것이 인간일 수 있다는 메시지는 지금 봐도 강렬하게 다가옵니다. 송강호가 연기한 박강두의 가족이 괴물에 맞서 싸우는 모습은, 재난 상황에서 무능한 정부와 대비되는 가족의 힘을 보여줍니다.
'기생충'은 봉준호 감독의 장르 혼합 능력이 절정에 달한 작품입니다. 가난한 기택 가족이 부자 박 사장네 집에 침투하는 과정은 코미디처럼 시작해서, 서스펜스를 거쳐 마지막에는 충격적인 비극으로 끝납니다. 특히 지하실에 숨어 사는 문광자의 존재가 드러나는 순간부터 영화의 분위기가 급격히 변하는데, 이런 급격한 장르 전환이 전혀 어색하지 않은 것이 봉준호 감독만의 특별한 재능이죠. "기우야, 넌 계획이 없어. 그게 네 계획이야"라는 대사처럼, 그의 영화는 관객의 예상을 완전히 뒤엎으며 새로운 충격을 선사합니다.
날카로운 시선으로 사회를 들여다보다
봉준호 감독의 영화가 특별한 이유는 재미있으면서도 깊이 있는 메시지를 전달한다는 점입니다. '기생충'은 겉으로는 두 가족의 이야기를 다루지만, 그 안에는 우리 사회의 계급 문제가 적나라하게 담겨 있습니다. 반지하와 고급 주택이라는 공간의 대비는 날카로운 빈부 격차의 현실을 보여주며, "이 집 지하에서 나는 특유의 냄새"라는 대사는 계급 사회의 보이지 않는 벽을 상징적으로 드러냅니다. 이런 섬세한 연출은 한국뿐 아니라 전 세계 관객들의 공감을 얻었죠.
'살인의 추억'에서는 1980년대 한국의 모습이 생생하게 그려집니다. 무능한 경찰력, 허술한 수사, 인권 침해가 일상적으로 일어나던 시대상이 송강호와 김상경의 연기를 통해 자연스럽게 드러납니다. 비가 오는 날이면 반드시 사건이 일어난다는 설정, 당시 유행하던 '여청'의 노래 요청 장면 등은 그 시대를 살았던 사람들의 기억을 생생하게 되살립니다. 웃으면서 보다가 문득 씁쓸해지는 것, 그것이 바로 봉준호 감독의 마법입니다.
'옥자'에서는 자본주의의 탐욕을 신랄하게 비판합니다. 유전자 조작 동물을 만드는 거대 기업 미란도 코퍼레이션과 그들에 맞서 싸우는 소녀 미자의 이야기는, 우리가 먹는 음식의 윤리적 문제를 날카롭게 지적했죠. 틸다 스윈튼이 1인 2역으로 연기한 쌍둥이 자매는 기업의 이중성을 상징하며, 제이크 질렌할이 연기한 TV 진행자 조니는 미디어의 허상을 보여줍니다. 이렇게 할리우드 배우들과 함께 만든 작품을 통해, 봉준호 감독은 자신의 메시지가 얼마나 보편적인지를 증명했습니다.
세계가 인정한 한국 영화의 자부심
'기생충'이 2019년 칸영화제에서 황금종려상을 받았을 때, 우리는 처음으로 한국 영화의 진정한 세계화를 실감했습니다. 이어진 2020년 아카데미 시상식에서는 작품상, 감독상, 각본상, 국제영화상까지 4관왕을 차지하며 비영어권 영화 최초의 기록을 세웠죠. "본투필름에서 시작해 여기까지 왔다"는 봉준호 감독의 수상 소감은 한국 영화의 성장을 상징적으로 보여줬습니다.
특히 인상적인 것은 봉준호 감독이 한국적인 정서와 문화를 그대로 담으면서도, 전 세계 관객들의 공감을 이끌어냈다는 점입니다. '기생충'의 반지하 풍경이나 짜파구리를 끓이는 장면 같은 소소한 한국의 일상이, 계급 문제라는 보편적 주제와 만나 세계인의 마음을 울렸습니다. 영화 속 "존중"이라는 단어의 반복적 사용이나, 계단을 오르내리는 장면들의 상징성은 언어와 문화의 장벽을 넘어 모든 관객에게 깊은 인상을 남겼죠.
현재 봉준호 감독은 미키 요시다의 소설 '미키의 전달'을 원작으로 한 새로운 SF 영화를 준비 중입니다. 로버트 패틴슨이 주연을 맡았고, 할리우드의 정상급 제작진이 참여한다고 하니, '설국열차' 이후 그가 할리우드에서 보여줄 새로운 도전이 기대됩니다. 특히 이 작품은 그의 첫 번째 완전한 영어 영화가 될 예정이라고 하는데, 그의 작품은 언제나 예측할 수 없는 즐거움을 선사하면서도 우리 사회에 대한 날카로운 통찰을 담아내니까요.
봉준호 감독의 영화는 단순한 오락거리가 아닙니다. 시간이 지날수록 새로운 의미가 발견되는 그의 작품들은, 한국 영화의 새로운 지평을 열어가고 있습니다. "아직도 칸에서 받은 상이 믿기지 않는다"고 말하는 그의 겸손한 모습처럼, 그는 계속해서 자신의 한계에 도전하고 있습니다. 앞으로 그가 또 어떤 작품으로 우리를 놀라게 할지, 전 세계 영화팬들의 기대가 커져가고 있습니다.